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 (문단 편집) == 판결 결과 == [[주한미군]] 측과 유족들 간의 공방은 계속되었고 검찰 측 수사도 시원치 못한 데다 비판 여론이 점점 확대되자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는 7월 10일에 미측에 재판권 포기 요청을 했다. [[SOFA]] 규정상 주한미군들을 포함해 한국군은 물론이고 상호간 SOFA 규정을 맺고 있는 모든 국가들은 훈련 중 사고, 즉 공무 집행과 관련된 범죄는 자국측이 그 재판권을 가지는 일종의 [[치외법권]]의 형태를 보이는데 이 사건에서는 그 재판권을 한국 측이 가지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8월 7일 미군 당국은 그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재판권 포기를 거부했다. 이걸 가지고 살인이 맞으니 은폐 혹은 미군들을 보호하려고 그랬다는 주장도 있지만 애초에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도 SOFA 협정상 자국이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 사고는 미국 입장에선 고의적이지도 않았고 훈련 중에 생긴 [[교통사고]]로 보고 있었고 재판권을 포기할 경우 이후 어느 국가에서든 벌어지는 모든 단순 사고에 당사국들이 한국을 거론하며 "왜 우리들은 허용을 안 해주냐"며 재판권 포기를 요구할 수 있는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군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후의 시선으로 보면 이것이 딱히 잘못된 조치는 아니었다. 다만 당시의 한국의 분위기와 정서상 이러한 결정이 [[오독]]될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거나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으며 결정적으로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던 것이 [[미국]]의 뼈아픈 [[오판]]이다.] 이후 11월 20일과 22일 [[동두천]] 미군 기지인 캠프 케이시 내 군사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배심원]]단은 피고인 미 육군 [[부사관]] 2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각각 무죄 평결을 내렸다. 다만 무죄 취지는 서로 달랐는데 우선 페르난도 니노 하사가 당황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여중생들을 본 것이 맞은 만큼 사고를 막지 못한 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그러나 무전기 고장으로 그 사실을 조종수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으니[* 기갑차량 특성상 무전기가 고장나면 외부통신은 물론 엔진소리에 묻혀서 내부 승무원간 대화조차 불가능해진다. 시동만 걸어 놔도 엔진 소리가 더럽게 시끄러워서 고래고래 소리질러야 겨우 들리는데 운행 중이면 귓구멍에 대고 샤우팅을 해도 제대로 안 들릴 정도다. 거기에 기갑차량 승무원들은 운행 시에는 소음 차단용 헤드폰까지 끼고 있기 때문에 외부 소리가 더 안 들린다. 이는 무전기를 고치거나 시동을 끌 때까지 계속된다.]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고[* 쉽게 말하자면 [[불가항력]]이었기에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크 워커 하사는 여중생들을 볼 수 없었고 관측병의 통보를 받아 움직이기에 사고가 났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으므로 처음부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미 형법상 검찰이 무죄에 대해서는 항소할 수 없기 때문에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 판결을 근거로 미 육군 2사단의 해당 장갑차 정비 관련자들은 장비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 등 근무태만이라는 명분으로 중징계가 내려졌다.[* 막판에 여중생들의 존재를 인지하고도 막지 못하게 만든 원흉인 무전기 고장의 책임자들이기 때문이다.] 두 피고인은 5일 후 한국으로부터 [[일본]]을 경유하여 [[미국]] [[캘리포니아]]로 출국하였다. '''그러나 피해자인 유가족과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 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마크 워커 하사의 [[변호사]]인 가이 워맥조차 "여중생들을 보지 못한 마크 워커 하사야 무죄가 맞지만 막판에라도 여중생들을 보긴 봤던 페르난도 니노 하사는 처벌을 받아 마땅했다"고 판결을 비난했다. 이들은 출국과 동시에 '본의 아닌 사고'에 유감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상 이 말이 이후에 폭발한 [[반미]] 감정의 커다란 [[도화선]]이 되었으며 더 큰 문제는 미안하다는 말도 아닌 유감이라는 사과라고는 볼 수 없는 말마저 했다는 것이다.] 조종수 워커 하사는 그때의 충격과 죄책감으로 [[PTSD]]를 앓다가 2004년 허리 통증을 이유로 육군을 떠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후술할 [[MBC]] <[[세계와 나 W]]>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세한 것은 맨 밑 단락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